<추노> 리뷰, '세상은 여전히 여기에' Cine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유가의 법도와 결합된 양반 사대부들의 지조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시대의 뼈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 법도는 우리가 '조선'이라고 선뜻 내뱉어 버리는 왕조의 역사와는 또다른 '조선'을 이루었던 상민과 천민의 삶을 속박하는 올가미였으며, 결국 뼈대였던 법도는 종국에는 고름이 되고만다.


드라마 <추노>는 '도망노비를 쫓는다'는 역사 속의 독특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은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운명론에 관한 이야기다. 사농공상의 법도, 한 번 양반은 영원히 양반이며 한 번 천민은 여원한 천민이라는 운명론.

<추노>는 이 운명론 속에 많은 것을 버무려 놓았다. 정치, 사회, 무협, 액션, 로맨스, 버디 무비적 요소까지.

재미있는 점은 <추노>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 운명론의 스펙트럼 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칼싸움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지만 모두 하나 같이 운명론을 맞대하고 있었다.

'도망노비'들은 그 법도와 운명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들이었고, 그들을 쫓는 추노꾼들은 운명론을 따르려는, 혹은 유지하려는 양반 사대부들의 용병이었다. 그런데 그 운명론이란 것은 사실은 사회 질서요, 권력이었다. 그리하여 <추노>는 단순한 액션활극이 아니라 운명과 혁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린 정치극이 된다. 사랑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거든 결국 그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적 욕망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추노> 속의 세상은 이대길이 늘 내뱉듯이 '자랄맞은 세상'이다. <추노>는 세상(혹은 운명)을 맞대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행동양식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세상에 순응한다. 또 누군가는 그 세계를 더욱 강화시키려고 하며 또다른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려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들 중에는 아예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자들도 있고, 세상의 일부만을 바꾸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며, 아예 전복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현실에 안주하게 된 자들도 있다. 드라마에는 이처럼 실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그 누구에게나 세상이 '지랄맞다'는 것이다.

우리가 욕망을 투여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이 세상을 거스르려는 자들이었고, 그리하여 애초에 <추노>는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작가가 드라마를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만들 의도가 아니었던 이상 우리는 그 인물들이 거스르려 했던 조선사회가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무너졌음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이기도 한 인물들의 욕망은 애초에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모든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즌 2를 예비하고 있지 않았던들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세상은 결국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맞다. 떠나지 않고 세상을 산다면 이미 그들은 우리가 욕망을 투여했던 그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년이를 깨끗이 잊고 농삿일만 하는 대길이, 권력에 빌붙지는 않았어도 세상을 등지고 선비로서 소일만 하는 송태하, 그대로 노비로 사는 업복이는 얼마나 매력 없는 인물들이 되었을 것인가.

세상을 바꾸려는 인물들의 욕망은 변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세상도 변하지 않았다. 송태하가 왕으로 세우려던 석균은 기껏해야 조선 백성의 지위를 얻었을 따름이고 노비들의 세상도 오지 않았다. 화적질 하던 짝귀도 결국은 화적질을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적어도 주요 인물들 중 한 명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이 가져다 주는 비장함이 없었다면 남는 것은 '허무' 뿐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도 끝났고 인물들도 갔지만 세상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들이 그렇게 바꾸고자 했던 세상 말이다. 그래서 <추노>는 비장함이 감도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비장함을 주는 것은 아마도 황철웅이다. 세상 속에서 세상처럼 살면서도 행복할 수 없었던 황철웅, 그는 결국 이 세상이 이를 거스르거나 받아들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랄맞은 세상이었음을 몸소 증명하고야 말았다. 이를 깨달은 뒤에야 황철웅은 제일가는 권력자의 딸이면서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아내의 비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랄맞은 세상은 아직도 거기에, 아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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