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마크 웹, 2009 Cine

처음엔 몇몇 블로거가 추천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OST 트랙리스트에서 스미스(Smiths)가 포함돼 있는 것을 보았고, 주이 디샤넬이 여우주연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맨틱 코미디는 식상하다는 이유로 보지 않아 왔는데 ─ 사실 기가 막힌 사랑 얘기는 내 주위에 더 많은 것 같다 ─ 아마 <노팅힐> 이후에는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쉽다. 500일이라는 기간의 초반과 후반을 왔다 갔다하는 플롯 구성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따라가기가 어렵지는 않다. 메시지도 간단하며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관계에 목매지 말아라, 그것은 운명이 아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레이션을 통해 "이것은 사랑얘기가 아니다"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는 셈.

말했듯이 영화는 시간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행복하게 만나는 시간과 헤어지는 과정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이 구성 속에 이미 메시지가 내재돼 있던 셈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이 틀어진 이후를 먼저 보여줌으로써 이제부터 두 사람이 시작할 만남은 운명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예비한다. 둘의 알콩달콩한 데이트 장면에 빠져들 때 쯤 실연의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는 톰이 등장한다. 이건 로맨틱 코미디니까 낭만적인 연애에 한껏 빠져보라고? 천만에! 자, 보라고. 관객인 당신이 빠져들 뻔 했던 이 로맨틱한 연애도 사실은 이렇게 끝이 나 있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임에도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감정선을 따르지 않는다. 시작할 때는 설레고 절정엔 뜨겁고 식어버린 후엔 한없이 차갑고 슬퍼지는 그 감정선 말이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영화는 그저 미지근해져버린다. 그렇게 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관계'다. 톰이 운명이라고, 천생연분이라고 믿었던 그 관계를 멀찌감치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연유로 영화는 시종일관 밝다. 심지어 톰이 실연의 늪에 빠져 있을 때도 그가 즐겨 듣는 영국음악 같은 우울함은 없다. 물론 실연을 겪은 소년을 마냥 덤덤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눈물을 쥐어짤 만한 실연의 아픔은 없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에 있다. 500일이 끝나고 새로운 1일이 시작되는 그 장면. 톰은 썸머와의 관계를 매듭 짓는 것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구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어텀(Autumn)'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여성을 만난다. 

썸머가 운명이었다고? 둘은 천생연분이었다고? 웃기는 짜파게티다. 이렇게 어텀이 찾아오는데!


덧 1. 그래서 결국 교훈은 톰의 어린 여동생이 한 말 속에 있다. "바다 속에 널린 게 물고기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덧 2. 주이 디샤넬 쩐다.

덧 3. 영화의 메시지엔 그러나 찝찝한 점이 있다. 영화의 끝물에서 나레이션은 '운명'이 아니라 '우연'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우연으로 등장한다고. 그럼 어텀이 우연히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금 죽겠는데~~~ 안 오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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