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Mind Control

미국에서 지내신다는 너의 사촌동생이라는 분에게 연락이 왔다. 너의 친척분들이 아마 말씀을 안하셔서 뒤늦게 너의 소식을 들으신 듯 하다. 니가 대학을 졸업하면 무엇이 되고 싶어했는지, 니가 들었던 수업이 뭔지, 또 그 수업의 선생님들이 누구신지 나에게 물어왔다.

나에게 남긴 그 메모를 본 것이 오늘 아침이었고, 그래서 난 다시 저녁 때 퇴근하면 자세히 얘기해 드리겠노라고 간단히 답장을 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저녁이다.

왜 저 질문을 나에게 하셨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아마 너의 모든 게 궁금하신 게 아닐까 하는 추측 뿐이다.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난 할 수가 없다. 니가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그 선생님들이 누구였는지는 같은 학교가 아니었기에 난 모른다. 결정적인 그 질문, 니가 대학에 졸업하면 무엇이 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도 난 모른다. 그리고 이건 아마 너도 잘 모른다. 난 여전히 그것이 니가 마지막 길을 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유였을 거라 생각한다. 모른다는 거..

니가 무엇이 되고 싶어했었냐는 질문을 받으니까 고등학교 때 하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너랑 나랑 인석이랑 셋이 모여서 "인석이 너는 공부 잘하니까 우리 둘은 대충해서 인석이가 트럭 해주면 그걸로 배추장사나 하자"고 했던 거. 참 쏘쿨이구나.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 질문은 그 때부터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때는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 대충 배추장사나 하자고 할 수가 있었던 거겠지. 사실 이건 배추농사 하시는 분들과 배추장사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그 땐 어렸으니까 스스로를 용서해 보자.

그랬던 적도 있는데 공교롭게도 인석이는 삼수를 했고 너와 나는 떡하니 명문대에 합격을 했지. 너 수시 합격하던 날, 논술학원에서 니 전화 받고 참 기뻤는데. 일부러 떨어진 척 하려고 침울하게 전화를 했는데 넌 멍청하게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피식 하고 웃음을 뿜어 버렸었잖아. 수능 끝난 직후 내 점수를 너에게 말할 때 좌절감을 느꼈을 너를 생각하면 뒤늦게라도 수시를 합격했다는 너의 소식이 어찌나 기쁘던지.

명문대생이라는 자부심과 프라이드도 채 1년을 못가더라. 그리고는 군입대가 다가왔지. 2008년 1월 21일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친구가 입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어머님은 돌아가는 우리에게 돈봉투를 쥐어주셨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납골당에 너를 두고 돌아올 때도 어머님은 우리에게 돈봉투를 쥐어주셨었다. 너의 빈자리를 우리는 늘 그렇게 채웠구나. 아마 넌 모르겠지, 지금도.

아마 그 이후로 우린 만나면 늘 똑같은 고민을 늘어 놓았다. 여자 문제,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래에 대한 문제. 여전히 후회스러운 것은 난 언제나 너에게 설교조였고, 그러면 넌 애써 반박하려 하다가 포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너의 고민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보려 해도 떨칠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너를 하늘로 등 떠밀었다는 자책을 하지는 않으련다. 아마 너는 너의 고민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이 사실은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믿기에. 떠나기 전 날 나에게 그 책을 주면서 행동을 통해 그 이야기를 했던 게 아니냐.

넌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나는 늘 마음 속으로 너와 나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왔다. 니가 주저없이 경영학과를 택할 때 난 주저없이 경영학과만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일하게 같은 선상에 있었던 건, 우리 또래가 되면 누구나 하는 고민 앞에서 누구나 내리게 되는 그 답을 우리는 쉽사리 택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 때문이었다. 여자 얘기를 제외하곤 입대 전후로 간혹 만날 때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이 얘기를 했어. 행복한 게 뭘까? 뭘 하면 행복할까?

그리고 바로 그 날 니가 나에게 그 책을 주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해답을 품고 있었던 거야. 니가 그 책을 나에게 줬다는 건, 너 스스로를 낙하시키며 나를 밀어주는 행동이었다고 난 믿는다. 니가 제대를 하고 면회를 와서 나에게 그 책을 들이밀 때만 해도 우리는 같은 답 앞에 서 있었는데 필리핀에 있었던 3개월 동안 대체 무엇이 너로 하여금 또다른 답을 찾게 했던 것일까?

아직 25년도 채 못살아봤지만 사는 동안에는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는 때가 있더라. 묘하게도 요즘 내가 그렇다.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하나의 사건은 다른 하나를 예비하게 되는 게야. 너의 마지막 행동이 예비한 사건이 무엇일까?

그래서 이제 어쩌면 니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행동의 이유를 찾는 것이 이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넌 너의 고민을 나에게 합일시켜 두고 떠나버린 셈이다. 니가 내게 던진 고민이 나로 하여금 두 개의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이제 한 발을 내디딜 때 마다 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늘 계속 너와 상의할 게다. 넌 대답을 할 수 없지만 난 계속 질문을 하겠지?

요즘 너와 마지막으로 갔던 그 냉면집을 자주 찾는다. 난 구태여 그곳을 가려 하지 않지만 일행들이 어쩔 수 없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더구나. 그리고 갈 때마다 미국산 돼지고기라고 불평하던 니 생각을 한다.

일전에 너에게 쓴 편지에서는 꿈에 니가 나오게 해달라고 썼다. 이제는 니가 꾸던 꿈을 내가 꾸게 해달라고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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