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유월의 마지막 주말 보내기 - 일상

저녁 10시 퇴근길에 맥주 한 병, 새벽 한 시 한 병 더 사러 백원 짜리 열아홉 개 들고 수퍼에 들렀더니 '더 많아 보이는데요?' '안 많아요.' '자주 오시는 분들은 저보다 더 가격을 잘 알죠. 술 좋아하시나봐요? 좋은 일이예요.' '과연-.-' 검은 비닐봉지 들고 나온 수퍼 앞에 남자아이 하나 유모차에 실려 멀뚱멀뚱 날 쳐다보길래 호탕하게 웃어줬다.

가로등보다 심지어 신호등보다 어두운 둥근 붉은 슬픈 달이 솜씨좋게 오려붙인 창호지처럼 떠 있다.

#
지난 주말
1년 만에 욕실 청소. 몇 달 만의 물걸레질. 벼르던 소형냉장고 처분. 옷가지 솎아서 처분. 서서 졸던 경비아저씨가 소스라쳐 깻다. 미안하게도. 대체 왜 경비실에서 자지, 밖에 서서 졸고 있는 거얏.
토요일 아침에 건전지가 떨어져 꺼져버린 휴대폰을 일요일 저녁 11시 출근길에 켜 봤더니, 직장 동료로부터 걱정스러운 문자 하나. 작년 실연 때 내 꼬라지를 봤기 때문에 걱정한 듯. 출근해 물었더니, 자전거나 타자고 전화했는데 꺼져 있어서 무지 걱정했다고, 집에 들러볼까도 했다고. 아! 난 사랑받고 있구나. 

금요일 퇴근길에 도서관에서 4권의 책을 빌렸다. 
데이워치 상·하, 민들레와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레이 브래드버리는 내 취향이 아니다. 처음부터 읽다가 도저히 안 읽혀서 중간을 펼쳐봤는데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문체를 헤밍웨이나 프루스트와 비교하고,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와 나란히 SF의 거장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걸까. 난 특히 로스앤젤러스 타임즈가 브래드버리를 무분별하게 상찬하기 위해 프루스트를 끌어들인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이럴 땐 김수영이 모더니즘에 대해 했던 말을 그대로 해 주고 싶다, 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난해한 것과 문법을 지키는 것은 별개라고 했던가, 문법을 어겨서 무슨 말인지 맥락이 닿지 않는 문장들을 나열하면 곧 난해한 것이이고 모더니티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칭 모더니스트들이라고 했던가. 아, 브래드버리가 난해하다거나 모더니티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시적인 문체가 다 얼어 뒈졌나보다. 이쁜 단어와 비유만 골라다 안개낀 듯 신비로운 분위기만 내어 쓰면 시적이냐. 하여간 난 이쁜 척 하는 사람들, 착한 척 하는 작가들은 참을 수가 없다. 이쁜 척하는 이쁜 것들보다 착한 척하는 작가들은 백배는 더 참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착한 글을 쓰는 작가들은 거짓말장이이거나 자신과 우주의 심연을 들여다 볼 용기가 없는, 진정한 의미에서 솔직하지 못한 채 (솔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설픈 글재주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민들레와인은 마치 못해도 열 번 쯤은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아무리 심심해도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나니아 연대기' 짝. (나는 톨킨의 절망과 자신과 루이스 양쪽을 향한 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씨451은 좀 나을라나... 설정이 하도 진부해서 민들레와인을 빌린 것인데. 뭐, 난 설정이 진부하다고 해서 곧바로 작품이 진부할 거라고 단정짓진 않는다. 어쩌면 진실은 진부함 속에 있는 것, 진부한 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진실이었기 때문에 진부해진 것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도 손이 안 가기는 해. 좀 지겹잖아. 그래도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 만은 아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라마 4,5권을 샀었다. 최근에야 라마1을 읽고 완전히 홀려서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2, 3권을 구해 읽고서 읽으려고 했는데, 민들레와인에 질려 참지 못하고 오딧에이를 읽고 난 뒤 라마 4권을 읽어버렸다. 
다시 한번, 아니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가지면 클라크와 브래드버리를 동일 선상에 놓고 얘기할 수가 있냐고옷!!!!

#
그동안 읽은 책
비천무를 눈물 뚝뚝 흘리며 다시 한번 완독했고, '쿠온, 미안해. 엄마아빠는 히피야'를 읽었고, 내 동경하는 르귄의 '하늘의 물레', '고양이의 추리'(이건 읽을수록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낯익지만, 결코 다음 페이지가 기억나지는 않는)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 1권'을 반 쯤 읽었고,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을 다시 읽고 있고, '그랜드 펜윅의 뉴욕침공기'를 낄낄대며 읽었고, 가끔 기형도의 시집을 들춰봤다. 
Share

Leave Comments



T-NA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