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보내기 : 유월 셋째주 - 고양이

1. 
금요일 밤 10시쯤 퇴근해서 술을 좀 많이 마셨다. 한 새벽 다섯 시 쯤 나는 잠든 것 같다. 애인에게 저주의 문자를 보내고. 나는 술을 많이 먹으면 잠들지만 또 빨리 깨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 아홉시 반 쯤 깨어났다. 여전히 술 취해 몽롱한 상태로. 옛날 애인에게 전화해 애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내 짜증과 분노를 한 시간 정도 늘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잠들어 오후 네 시 쯤 깼다. 

2.
여전히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끝장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를 여전히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외로워지는 것이 두렵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아주 나이먹은 여자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했어야만 했던 것들도. 또 그걸 내가 왜 못 했는지도. 앞으로도 못 할 것이라는 것도. 나는 깨달았다. 이해한 순간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나는 그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보냈다. 저주의 문자는 해명하지 않아도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므로 사과하지는 않았다. 

3. 
르귄의 하늘의 물레를 마저 읽었다. 다 못 읽었다. 11시 쯤에 나는 다시 벌써 잠들었다. 술도 없이. 

4. 
일요일 아침 열 시 쯤 일어났다. 새벽 3시 정도에 금요일 밤에 끝장난 애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 연락 바랍니다' 나는 그것이 휴대폰에 내장된 자동 문자 보내기 기능인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버튼을 잘못 눌렀을 것이다. 나는 신중하게 정말로 연락을 바라는 것이냐 잘못 보낸 문자 아니냐고 답을 했다. 당연히 그로부터는 답이 없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낮에 한번 광고 문자 왔을 때 내 심장이 철렁하며 한동안 두근거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가 내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연락을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고,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헤어지고 싶지 않고,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5. 
일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 마자 샤워를 했다. 일주일 만이다. 그리고 하늘의 물레를 다 읽고 고양이의 추리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이 추리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는 것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 됐지만, 전혀 추리의 결말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범인이 누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내 기억일 것이다. 나는 추리소설의 범인을 맞추는 재주가 정말로 없기 때문에.
오후 세 시 쯤 나는 고양이의 추리를 다 읽었고 더이상 더위를 견딜 수 없어서 머리를 깍으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는 나같은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난 주에 무려 35권을 샀기 때문에, 집에 읽을 책이 넘치는 데도. 습관적으로 만화 대여점엘 들렀다. 

6. 
고양이 얘기가 나와서 귀를 쫑긋 세웠다. 젊은 대여점 아르바이트 아가씨와 중년의 볼품없어 보이는 아줌마의 대화는 이런 내용이었다. 
만화 대여점이 있는 상가 건물은 도로 쪽에서는 1층이고 뒷쪽에서는 지하다. 대여점 뒷쪽에 어미가 둥지를 틀고 네 마리 새끼 고양이를 낳았다. 삼일 전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장난을 치다가 환풍기 옆 구멍으로 떨어져 대여점 책꽂이 뒤에 숨었다. 어제 어미가 새끼고양이가 떨어진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의자를 딛고 다시 환풍기 옆 구멍으로 뛰어오르려 했지만 어미는 세 번을 실패하고 카운터 뒤로 숨어버렸다. 철물점에서 사다리를 빌려다 놨지만 이미 늦었다.
아줌마는 아파트 단지 근처의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도 주고 물도 주며 3년간 보살펴 왔다. 고양이는 다 죽여야 한다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둥, 차갑던 이웃들이 사료 먹는 고양이가 더이상 쓰레기봉투를 풀어헤치지 않는 걸 보고 최근에는 아줌마의 고양이 돌보기를 마지못해 용인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돌보는 고양이에게 물려 팔뚝을 꿰매기까지 했다고 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줌마는 대여점 고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끼고양이가 이곳에 빠진 걸 알고, 어미가 새끼들을 구하려 들어온 것을 알고 그녀도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어떻게든 어미를 끌어내고 그 어미가 새끼고양이를 끌어내 무사히 구출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이 어미와 새끼들도 그녀가 돌보던 놈들이다. 그녀는 손끝에 물을 묻혀 책장 뒤로 밀어넣었다. 새끼고양이들은 그녀의 손가락을 핥았다. 그러나 책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참치캔과 오뎅꼬치, 마따다비 가루와 캣닢 막대기를 챙겨서 대여점으로 갔다. 책장 뒤의 새끼 고양이는 캣닢 막대기에 묻은 캔 참치 부스러기를 핥았다. 비록 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어미는 마따다비에도 반응하지 않고 내 손을 할퀴었다. 
아줌마는 집이 걱정된다며 내게 고양이를 맡기고 나갔다. 나는참치캔을 그룻에 담아 새끼고양이가 숨은 책장 앞과 어미고양이가 은신처로 삼은 카운터 마루바닥 앞에 놔 두고 만화책을 뒤적거리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 있었다. 고양이를 두 마리 기른 적이 있다는 아르바이트 아가씨도 나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어미가 마루밑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배고픈 새끼고양이들이 책장 밖에 놔둔 참치캔의 유혹을 못 이기고 나와 접시를 핥았다. 나는 잽싸게 내 손바닥 만한 두 마리 새끼고양이를 양손에 집어들고 대여점 뒤로 갔다. 대여점 문을 잠그고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참치캔 그릇을 들고 따라 나왔다. 어미는 네 마리를 낳았다고 했는데 그곳에는 한 마리 밖에 없었다. 판자 조각으로 비막이가 있었고 바닥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었고 물과 사료가 담긴 그릇이 있었다. 두 마리를 손에서 놔주자 한 놈은 두리번거리다가 비막이 판자 안으로 쏙 들어갔으나 한 놈은 좀 휘청거리며 망설였다. 내가 엉덩이를 살짝 밀어주자 쏙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그녀는 어미가 저기 있다고 말했으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지갑이 있는 만화방으로 돌아와 두 권의 만화를 신중하게 고르고 나와 뒤로 돌아가 봤다. 새끼도 어미도 없이 사료그릇과 물그릇만 있었다. 
뭐, 추락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어미가 옮겼겠지, 아줌마가 그들을 찾아내 친절하게 다시 사료와 물을 제공하겠지.

이게 정말 우연의 하이라이트이며 소설같은 장면인데, 우리집 래주와 같은 종류의 하얀 고양이를 안은 젊은 부부가 새끼고양이를 양손에 들고 있는 나를 마주 지나갔다.

7.
초인종이 울렸을 때 나는 옆집 할머니인 줄 알았다. 그리고 뭔가 선물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왜냐하면 더이상 올 택배가 없었기 때문이고 저녁 8시 넘은 시간에는 포교자들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고양이가 뛰쳐나갈까봐 살짝 문을 열었고, 입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옆집 할머니는 수줍어하며 새로 담근 김치와 도라지 무침을 내밀었다. 늦게 들어와 라면이라도 먹으려면 뭔가 있어야지. 나는 고마워요, 잘 먹을께요를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여러번 반복했다. 내게 김치는 정말로 귀한 것이기 때문에.

전세금을 올려주면서까지 이번달 계약 만료인 전세아파트 거주 연장에 동의한 것의 절반 이상은 이 옆집 할머니 때문이다. 나머지는 귀차니즘. 친절한 이웃이란 정말로 귀한 행운인 것을 나는 안다.
그래도 새로 담근 김치를 선물받은 것은 처음이다. 묵은 김치나 반찬거리, 사과 같은 것들은 여러번 받았지만. 나는 금방 담근 김치를 좋아한다. 누군가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어 받은 벌써 일부는 썩어가고 있는 사과들 중에서 그나마 성한 것들을 골라서 수줍게 나눠줬을 때도 나는 아주 고마웠다. 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사과는 또 다른 사람들이 먹었지만. 친절은 유용해서 마음을 울리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수줍어하며 공짜로 얻은 식용유나 참치캔, 비누 같은 것들을 선물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수십번 거절하는 몸짓과 말 끝에 겨우 받았다. 내가 그녀에게 받는 것이 훨씬 많은데도. 

자주 그녀는 깊은 밤에 아파트 복도에 나와 서 있다. 추운 겨울에도. 술이 그녀의 할아버지를 집어삼킬 때마다. 이 아파트에서 지낸 두 번의 겨울, 수도관이 동파되지 않도록 할아버지는 정성스럽게 낡은 옷가지들로 수도관을 감싸고 관리실에서 세대마다 배포한 비닐을 나 대신 받아다가 꼼꼼하게 테이핑을 해 덮어 주었다. 내가 관리실에서 동파방지용 비닐을 배포한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그러나 할아버지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소리를 지른다.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이웃에 끼칠 민폐를 걱정해 추운 겨울에도 술이 잠들 때까지 밖에 나와 서성이는 것이다. 나는 새벽 네 시에도 그런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녀를 내 방으로 초대했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나는 반 시간 쯤 지나 문을 열어봤는데, 그녀는 없었다. 나는 술이 잠들고 그녀가 누웠나 보다 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오년째 알콜릭이다. 그녀의 옆집으로 이사오기 한참 전부터 나는 매일밤 혼자 술을 마신다. 아마 그녀가 담근 김치도 대부분 술안주가 될 것이다. 얼마 전 술을 참으려고 하다가 기어이 늦은 시간에 술을 사러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 서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나는 죄책감이 들어 고개를 까딱하고 수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가 사고라도 당하면 그녀는 정말로 진심으로 슬퍼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긴 인생을 살면서 온갖 풍파를 거쳐왔겠지만, 그래도 참한 옆집 처녀의 죽음은 그 쪼글쪼글해진 영혼에도 틀림없이 얼마간의 슬픔을 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살아야 한다. 

언젠가 자정도 넘어 퇴근하다가 술취한 할아버지를 피해 복도에 나와있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반시간이 넘도록 삶의 넋두리를 내게 털어놓았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에도 심한 바람기로 그녀를 괴롭혔다는 것. 평소에는 착하고 얌전한 사내라는 것. 그녀가 젊었을 적에는 미용실을 했었다는 것. 그녀의 아들의 마누라가 가출해 쌍둥이 손자를 맡아 데리고 있다는 것. 며느리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란다는 것. 아내를 용서하라고 아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 나중에 그녀는 며느리가 돌아왔고 아들과 재결합했고 쌍둥이를 데려갔다는 것을 말해줬다. 그들은 주말에 가끔 온다. 

그날 나는 슬쩍 mp3를 켜고 그녀의 삶을 녹음했다. 언젠가는 정식으로 파란만장하고 평범한 그녀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

8.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빌려온 두 권의 만화를 다 읽고 이제 철학자의 키스를 읽고 있다. 내일까지는 어떻게든 마감해야 할 여섯 개의 원고를 무시하고. 세 마리 고양이들은 여기저기 좋을 대로 자리잡고 앉아 졸고 있다. 
평범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져 기억에 남을 파란만장한 주말이었다. 

9.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서로 사랑하기는 더 어렵다. 정말 행운인 것은 두 사람이 상대방을 사랑하는 시간대가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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