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포스팅인데, 역시 라디오 원고네요. -.-; 주제는 '아이폰4에 들어간 한국 부품들'입니다.
KBS월드 라디오 '시사충전, 여기는 서울입니다'의 IT 소식 꼭지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해외향 방송이라 국내에선 인터넷으로만 들을 수 있다는..
지난 주 IT 관련 최대 이슈는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 신제품 '아이폰4'였습니다. 디자인이나 기능, 운용체계 (OS)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어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이 아이폰 신제품의 속을 뜯어보면 주요 부품은 대부분 한국 기업들이 만든 것들이라고 합니다.
1. 애플이 지난주 '아이폰' 신제품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장에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요, 이 '아이폰4'에는 한국 기업들이 만든 부품들이 많이 쓰였다면서요?
- 네, 아이폰4는 애플의 최신 모바일 OS인 'iOS 4'를 채택하고, 전자책 서비스인 'i북'이나 광고 플랫폼인 'i애드'를 쓸 수 있게 하는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개선이 많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선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한국 기업들의 부품소재 기술입니다. 해상도가 더 높아진 디스플레이와 사용 시간이 더 길어진 배터리 등을 한국 기업이 제공했습니다. 저장 메모리나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반도체도 한국 기업이 만들었습니다.
2. 어떤 기술들이 아이폰4에 쓰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번에 아이폰4를 소개하면서 가장 자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이폰4의 새 디스플레이입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란 이름을 붙인 LCD 창인데요, 화면을 구성하는 화소, 즉 픽셀이 아이폰 기존 제품보다 4배나 많이 들어갔습니다. 같은 공간 안에 화소가 많을 수록 선명하게 보이니까 화질이 그만큼 좋아진 셈입니다. 1인치당 픽셀이 326개 들어 있는데요, 사람 눈이 인식할 수 있는 픽셀이 300개 내외라고 합니다. 즉, 사람 눈이 보는 것과 거의 유사한 해상도를 구현했다는 얘기입니다.
잡스가 '정말 놀랍다, 이런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자랑한 이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제공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LG디스플레이라는 회사입니다.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양대 LCD 제조사인데요, 얼마 전 나온 아이패드의 LCD 화면을 공급한데 이어 이번에 아이폰 신제품용 최신 LCD 제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3. 배터리도 한국 제품이 쓰인다면서요?
- 네, 휴대폰 같은 휴대형 기기는 배터리 수명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이폰은 그간 배터리 수명이 좀 짧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통화 시간을 40% 정도 늘였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배터리 성능이 더 좋아졌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삼성SDI가 아이폰4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아이폰4에는 A4라는 새 반도체 칩이 쓰였는데요, 동영상이나 사용 환경 등의 기능을 지원하는 이 반도체가 기존 제품에 비해 처리 속도와 효율성이 높고 전력 소모가 적다고 합니다. 이 반도체는 애플이 자체 설계했는데요, 실제 생산은 삼성전자가 대행해 줬다고 하네요.
4. 삼성 입장에선 애플이 최대 라이벌인데, 또 애플이 삼성의 중요한 고객이기도 하네요.
- 그렇습니다. 애플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음악이나 동영상을 저장하는데 쓰이는 플래시 메모리도 삼성전자가 공급합니다. 본래 애플은 아이팟에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는데 몇해 전 삼성전자와 애플이 전략적으로 손잡고 플래시 메모리를 채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은 대량의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또 저렴하게 공급받고, 삼성전자는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면서 두 회사 모두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 외에 회로 내부의 전류 세기를 조절하는 적층세라믹콘덴서는 삼성전기가, 과전압으로 인한 회로 손상을 방지하는 칩 바리스터라는 부품은 아모텍이란 국내 회사가 공급합니다. 카메라 모듈은 LG이노텍이, 회로 기판은 인터플렉스라는 국내 기업이 납품한다고 하네요.
5. 한국 기업도 애플을 고객으로 잘 모셔야겠지만, 애플도 한국 기업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애쓰겠네요.
- 그렇습니다. 사실 완제품 업체가 '갑'이고 부품 업체가 '을'입니다만, 완제품 성능 자체를 결정짓는 핵심 부품소재 수급이 불안정하면 완제품 업체도 곤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파트너 관계로 갈 수 밖에 없고요. 그래서 아이폰4 출시를 얼마 앞 둔 이달 초에 애플의 서열 2위 임원이 LG디스플레이를 방문해 LCD 공급 문제를 협의하고 갔습니다.
애플뿐 아니라, 얼마 전에 소니 회장도 한국을 찾아 삼성 이건희 회장을 만나고 갔는데요, 이 때도 소니의 LCD TV 사업을 위해 삼성에 LCD 패널 공급에 협조해 달라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 예전에는 한국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도 그 안에 부품이 다 외제라 우리에겐 남는 것이 없다, 이런 얘기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우리 부품소재가 외국 첨단 제품에 많이 쓰이는 상황이 됐네요.
- 그렇습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기술이나 경험도 없이 선진국을 추격하는 후발 주자 입장이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주요 부품을 사다 완제품을 만들어 싸게 수출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그간 산업이 성장하면서 우리나라 부품소재 기술도 많이 발전해 세계적인 첨단 기기에 널리 채택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혁신적 부품소재 없이는 혁신적인 완제품이 안 나오니까요, 세계를 휩쓰는 좋은 부품소재가 우리나라에서 앞으로도 계속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폰, 아이패드가 화제가 되니까 신문 지면엔 '아이폰 뜯어보니... 한국 부품 회사 웃는다' 이런 류의 기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 또 '외국 회사 하청이나 해 주는게 뭐 자랑이냐, 삼x Lx 언플 쩐다' 류의 댓글이나 트윗도 많이 보입니다.
삼성까, 애플빠, 언론 등이 물고 물리는 끝없는 빨아주기 & 까대기의 순환.
하여튼 한때 부품소재 산업을 취재했던 입장에서 아이폰 같은 세계적 인기 디바이스의 핵심 부품들을 한국 기업들이 공급한다는 것은 상당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기분 좋은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이 '가마우지'와 같다.. 한때 많이 나왔던 말입니다. (요새도 완전히 개선됐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목줄을 잡은 어부에게 잡은 물고기를 고스란히 빼앗기는 가마우지 새처럼 우리 산업도 외형만 클 뿐 부품소재를 제공하는 일본 기업에 수익을 고스란히 내 주고 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기업들도 많이 성장해서 아이폰 같은 혁신적 기기의 핵심적 부분들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한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건 괜춘한 물건인 것 같군요. (물론 그렇다고 애플이 'OLED보다 레티나가 더 좋아여'하고 굳이 외쳐대는 것이 좀 엄.. 하긴 함..)
우리 기업들은 기술도 브랜드도 없는 - 가진 건 깡다구밖에 없는 - 후발 주자라 핵심 부품소재를 불리한 조건에 사다가 완제품은 싸게 팔아야 하는 처지였죠. 그러니까 핵심 부품소재 공급자들에게 많이 휘둘렸는데요.. 반면에 애플이야 자기들이 만든 시장에 자기들이 만든 제품을 자기들이 결정한 가격에 파니까 부품소재 업자들에게 그닥 휘둘리지는 않겠죠. '아이폰에 국산 부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대!' 하고 감탄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과거 일본 부품 업체가 우리나라 전자 대기업에 큰 소리 쳤듯이 우리도 애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아마 애플에 납품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 지금 jobs님하의 히스테리를 지금 겁나게 받아주고 계신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정말 핵심적인 것 몇 가지는 아마 극소수의 업체들만 만들어 공급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극소수의 업체들 중 한국 기업이 상당수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 이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그만큼 고도화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정말 일 잘 하는 여공 외엔 우리 산업이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던 그 시절과 비교해 생각해 본다면, 좀 자랑스러워 해도 될 듯 합니다.
ps. 아이폰4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AP)를 '애플이 설계하고 삼성전자가 생산하다'고 해서, 말하자면 삼성이 그야말로 하청 받아 빌빌 싸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렇다기 보단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수탁 생산'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 다른 업체가 설계한 것을 위탁 생산해 주는 파운드리는 반도체 산업의 주요한 사업 모델 중 하나이고 대만 TSMC 같은 회사들이 이런 모델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삼성전자도 최근 파운드리에 신경을 쓴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