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고기" 등의 "위서" 논란 Issue

"한단고기" 등의 "위서" 논란

어떤 미국 간호사가 우간다의 "왕"으로 등극했다는 아래 기사를 읽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마도....한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으로서
"코미디" 같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왜냐면.....한국역사에서의 "왕"이란......그야말로 거대한 국가조직을 거느린 군주인데
도대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간단히 왕이 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후진사회라서 그런 일도 가능한가 보다 하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그건 한국적 사고방식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그것이 결코 "코미디"는 아닌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여러 아프리카 왕족들을 친구로 가까이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왕족"이라고 하니까......뭔가 거창한 귀족으로서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만나본 아프리카 왕족들이란.....대부분은 상당히 가난한 편인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물론, 나도 아프리카 역사를 모른다.
그러나.....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아프리카에는.....무수히 많은 부족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무수히 많은 왕족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에는 대부분 실제적 정치권력은 없이
그저 거의 명예직 비슷한 위치로 전락해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 부락이나 부족 단위에서는
실제 "왕"으로 존경을 받는 듯하다.

다시 말하면.....한국 고대역사에 나오는 왕들,
즉, 상당히 큰 규모의 거대제국을 통치했던 "왕"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미 간호조무사, 우간다 왕 등극

YTN동영상 | 입력 2009.10.20 14:48

미국에서 간호 조무사로 일하던 찰스 웨슬리 뭄베레 씨가 우간다에 있는 한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미국에서 20여 년 동안 망명생활을 해온 우간다 왕족 56살 뭄베레 씨는 지난 8월 정부가 '오부싱가 브와 렌주루루' 를 우간다의 7번째 왕국으로 인정함에 따라 이번에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http://tvnews.media.daum.net/view.html?cateid=1046&newsid=20091020144804316&p=ytni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갑자기 위와 같이 뚱딴지 같은 얘기를 하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우리가 "한단고기" 등 고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사회적 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큰 착각이라는 말을 나는 하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고서들은......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오래전의 얘기들을 다루고 있는 것들이며
그 속에 나오는 일들은.......사실 현대어로서 묘사되기에 쉽지 않은 측면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자신의 민족적 뿌리" 찾기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고서들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그런 "고서"들 대부분이.....저자의 시각에 따라....
때로는 심각히 조작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데....아마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자신의 집에 "족보"라고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그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그 내용을 완전히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바로는.....결단코 그렇지 않다.
예컨데, 우리 집 "족보"만 해도.....심각히 날조, 왜곡되어 있음을 안다.

족보에 올라있는 사람 이름 자체를 날조 조작하는 일은 아마 드물겠지만....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등등을 자신의 가문에 유리한 방향으로 고의적으로 날조, 조작하더라는 말이다.
심지어.....현대에 들어와서 올려진 족보내용들 조차도 그 지경이다.

마찬가지로.....

한단고기 등 한국의 고대사서들이건, 중국의 25사건, 일본의 서기건....
아마 대부분은 그런식으로 상당 부분....심각히 왜곡되어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실제로 그런 주장들이 매우 많음을 나는 알고 있다.
아마 누구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간단히 그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현존하는 "삼국사기"라는 것 조차도....."일제 조작설"이 있는 지경이다.

만일.....그런 것들 모두를....."위서"라고 우기며 내팽개친다면
사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역사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일까???



판테라라로 부터 강간당한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 
                    by 건데기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는 니케아에서 천주교 주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입니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신이 어떻게 창조자인 인간들을 구원하겠습니까?

 

예수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판테라의 강간에 의해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사생아로서 로마병사 판텔라의 아들이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의 지역정세는
로마군의 지배하에 약탈과 강간이 자행되던 시기였다.
로마의 전쟁사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로마 병사들에 의해
대부분의 유대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점령군 로마 병사로서
성소를 지키던 판델라가 당시 대제사장의 딸이었던 마리아를 강간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 유대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유태 5천년의 종교. 사상. 철학. 역사. 법률. 사회. 민속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많은 정보가 전승된 유태 구전 율법
 
미슈나를 기록한˝탈무드˝에는 예수의 행적에 대해 로마 병정
판데라의 아들 예수 (Jesus Ben Pandira)의 설교 전파에 대한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실제로 판델라의 묘비까지 발견되었다.
그리고 제5복음서로 지칭되는 외경 빌라도 행전에 보면
예수의 사생아 부분에 대한 논란이 기록되어 있는데 유태인 원로들이
예수 당신은 간통으로 태어났다고 외치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숨겨진 성서 109페이지, 세계의 종교 342페이지 참조)
 
탈무드에 쓰인 예수에 관한구절.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귀족과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었던 그 여자(성모 마리아)는 목수들과 음탕한 짓을 저질렀다. (Sanhedrin. 106a)
머리를 만져주는게 직업이었던 여자 미리엄 (성모 마리아)은 많은 남자들과 간음했다. (Shabbath. 104b, footnote#2)
 
예수(Jesus the Nazarene)와 그의 제자들은 마법과 흑마술을 사용하여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미혹했으며 유대민족의 종교를 전복시키려는 이방민족 열국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Sanhedrin. 43a)
 
예수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운 마법을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토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자신의 살갗을 자르는 행위를 저질렀다. (Shabbos. 104b)

 
예수는 성적(性的)으로 문란했으며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했다. 그는 그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쫒겨났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Sanhedrin. 107b; Sotah. 47a)
 
유월절 전날밤, 예수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당신은 그가 변호를 할 가치가 있는 자였다고 생각하오?
그는 민중을 미혹하는 자가 아니었나이까? (Sanhedrin. 43a)

과연, 세계인들은 개신교 교리책과 탈무드 중에 어떤 것을 더 신뢰를 할까요?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ree_board3&wr_id=146492



나는 기독교 경전인 Bible을 좀 읽어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전모에 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다.

그런데 보통 "동정녀 성모 마리아"라 부르며 지고지순한 성처녀로서 아이를 낳은 여인으로
기독교 경전에는 아마 묘사되어 있지 않을까.....싶다.
그러나....위 어느 사람이 소개한 "탈무드"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라는 여성은 별로 성처녀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 그렇다면....이제 기독교 경전인 Bible이거나, 또는 "탈무드"이거나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위서"라고 주장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면.....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 기독교 경전인 Bible이 위서인가???
아니면, "탈무드"가 위서인가???


그러나......내가 진정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그런 따위가 아니다.

예컨데,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도.....조선인측에서 기록된 문서들과
당시 왜인들이 기록한 문서들에는 동일한 전투에 대해서도
서로 상이한 전투결과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즉, 역사를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했다는 말이다.

결국....진짜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그런 사서들에 요구하는 것은.....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면 과거 시대에는.....그런식 역사기록방식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도 각국의 역사적 기록들이 그런식으로 기록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역사란 단지 "승자측"의 기록물일 뿐이라던가.....

한단고기 등의 고대사서들에는.....물론 터무니 없어 보이는 내용들이나
심지어 근현대적인 언어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고대역사서"라고 하는 것들이 본질적으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었음을 안다면
"고대사서"들의 일부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그것 전부를 "위서"라고 몰아부치는
아둔한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신....진짜 역사와 관련없이 날조된 부분과 진짜 역사와 관련된 부분을
가리는 작업을 할 것이다.

결국....진정한 사학자들도 바로 그 부분에 관심이 있을 것이지만....
사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바로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진서론자들 "식민사관은 이제 그만"

'환단고기' 등을 '진짜'로 보는 쪽은 "지엽적인 자구에 연연해 전부를 위작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모든 내용이 후세에 창작됐다는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진서라는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서 13대 흘달(屹達) 단군 50년조에 나오는 '오성취루(五星聚婁)'라는 기록이다. '다섯 개의 별이 누성(婁星·이십팔수의 16번째 자리에 있는 별들)에 모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 등이 수퍼 컴퓨터를 통해 추적한 결과 기록보다 불과 1년 뒤인 기원전 1733년에 금성·목성 등 다섯 개의 행성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대해선 '고조선 건국 연대를 2333년으로 잡은 연구의 설정이 잘못됐다'는 등의 반론도 있었다.

'환단고기'에서 연개소문의 조부 이름을 자유(子遊)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도 진서라는 근거로 제시된다. 1923년 중국 뤄양(洛陽)에서 발견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의 묘비에 처음 나타난 이름이므로 책의 진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서론자들은 '책이 1923년 이후에 쓰여졌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규원사화'에 대해서는 1972년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등의 학자들이 '조선 중기에 쓰여진 진본'이라고 판정했던 것이 진서라는 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환단고기' 등이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와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었던 '치우'는 '환단고기'의 존재를 거쳐 국가대표 축구 응원단의 상징이 됐다. 바이칼호에서 민족의 기원을 찾는 시각도 이 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고조선 시대에 한글과 유사한 문자인 '가림토(加臨土)'가 존재했다는 주장의 논거도 '환단고기'였다. 안시성 전투 직후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 태종을 장안성까지 추격해 항복을 받아냈다는 이 책의 기록도 곧잘 인용됐다.

반면 '환단고기' 등을 위서로 보는 주류 학계의 의견대중들의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식민사학'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시인 김지하씨 등의 일부 문인들은 "고조선의 역사를 열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다"며 '환단고기'를 옹호하고 있다.


http://minjokcorea.co.kr/sub_read.html?uid=3635&section=sc18&section2=  (기사 전문은 여기에)







한단고기 위서론 비판

(괄호 부분은 퍼온이가 첨부한 것임)

현재 제기된 "한단고기"에 대한 위서 주장은 역사적 자료와 고문헌을 엄밀히 검토해서 비판한 것이 아니고
'개념'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정통 실증사학자'들이 한단고기를 '무조건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는 부분입니다. 그럼 ("주류사학자들이") 위서로 판단하는 것을 살펴보고 비판해 보겠습니다.

첫째, "1923년 중국 낙양에서 남생(南生 : 연개소문의 아들)의 묘지명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이 "환단고기"에 나오는데 그것은 "환단고기"가 1923년 이후에 지어진 증거이다.
 ("실증 주류사학자"들의 주장)

이에  대한 다른 교수의 다른 시점을 볼 수 있습니다.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는 장수왕의 연호를 건흥이라 기록한 대목이 보인다. 이 [건흥]이라는 연호는 1915년 충북중원군 노은면에서 발견된 불상의 광배명에 [건흥5년 병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중략... 장수왕 즉위 5년은 병진이 된다 따라서 동병진년 불상광배와 태백일사를 통해 건흥이 장수왕의 년호다. 라는 새로은 지견을 추가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온이 주: 만일 태백일사의 기록이 없었다면...건흥이 도대체 어느 왕의 연호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 [태백일사](한단고기)에는 연개소문의 아버지이름을 대조 할아버지는 子游라 하고 증조할아버지는 [광]이라며 연개소문의 가계를 조대기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개소문의 조부 및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하고는 어떤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남양에서 발견된 연개소문의 아들 泉男生墓誌에는 泉男生의 증조부의 이름을 子游로 명기하고 있어서 태백일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도학교수 (민족지성 p208 1986년 11월)

같은 글을 보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묘지명이 발견된(1923) 이후에 한단고기가 써진 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병훈이 저술한 "정신철학 통편(精神哲學 通編, 1920년 간행)'은
("실증 주류사학자"들이) 1923년 이후에 지어졌다고 주장하는 "환단고기"의 천부경을 인용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후대에 발견된 '이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사료가 한단고기에 나옵니다.

한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대진국(대진국 : 발해는 자기 스스로를 발해라고 부른 적이 없으며, 항상 대진국이라고 불렀다)의 문제(文帝: 중국측 사서에서는 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므로 문제라고 하는 것이 옳다)인 대흠무(大欽武)연호가 대흥(大興)이었다고 밣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정효(貞孝)공주의 묘비가 발견된 1980년 이후에야 알려졌다.

둘째, "문화"라는 말이 Culture라는 개념으로 쓰인 것은 근래의 일인데, "환단고기"에서 쓰이는 문화라는 개념이 그와 같기 때문에 위서라고 규정짓는다고도 하였다.

이 부분은 같은 문화라는 말을 쓴 규원사화의 원본이 발견되었므로
'문화'라는 말이 근래에 기원한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시조와 관련된 영고탑(寧古塔)이란 지명이 "환단고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위서 시비의 좋은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단 하나가 아닙니다.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청대이전의 "요사(遼史)"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는 지명입니다.

셋째 기타의 개념 논쟁으로 송찬식(전 국민대)교수는 대종교의 교리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위서로 주장하였고, 박광용(성심여대)교수는 기독교 사상과 비슷하다고, 이기백(한림대)교수는 청동기 시대 국가이론을 근거로 위서로 주장했다.

개념 논쟁은 큰 의미가 없지만 한가지만 비판하자면 (삼신일체론)이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서 비롯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기봉선서(약 BC100년전에 저술된 책. 필자주)나 한서 율력지에도 삼신일체론이 나온다.

심지어 박강용 교수는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 옹호와 연결된다고 하는 주장(역사비평 10월호)하고 있으나 그것은 기마종족 연맹의 과거사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한단고기의 별자리 분석으로 한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주장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설명하겠습니다.

한단고기 단군세기에 13대 단군 흘달 때 "흘달 50년(기원전 1733년) 다섯행성이 루 별자리에 모였다." 는 오성취루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 현상이 일어났다고 입증 합니다. 컴퓨터로 계산해 본 결과 오성취루 현상은 기원전 1953년 2월 25일 새벽과,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일어났습니다.

기원전 1734년 오성취루현상은 한단고기에 기록된 오성취루현상과 거의 1년의 오차가 날 뿐입니다. 박교수는 만약 이 기록이 조작에 의해 임의로 책에 삽입되었을 때 실제 현상과 있었던 시점에서 단 1년 차이로 우연히 가까울 확률은 0.007이 된다고 합니다. 즉 조작의 가능성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9세 단군 마휴 단제의 기사를 보면 "마휴 9년(기원전 935년) 남해에 썰물이 세 척이 물러갔다" 이 썰물현상은 달이 불규칙한 궤도운동을 하며 조석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역시 박창범 교수는 기원전 935년을 기준으로 전후한 200년간 해와 달의 위치를 계산하고 이들이 지구에 미친 조석력의 세기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4년 후인 기원전 931년에 가장 강한 조석력이 발생했음을 발견 합니다. 이 썰물 기사가 사서에 임의로 삽입될 수 있는 확률은 0.004라고 입니다.


결론적으로 한단고기의 위서논란은 분분하지만 철저한 고증과 자료가 뒤받침되지 않는 논쟁에 불과합니다.

한단고기의 오류는 분명이 존재하고, 몇몇 부분은 명백히 편찬자인 계연수가 추가로 서술한 곳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독립운동가이며 단재 신채호 등과도 친밀했던 계연수의 입장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재 신채호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부분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용어를 자신의 시대에 맞추어 개작했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했다고 해서 '역사서'가 위서일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역사로 인정한다는
이상주의적인 실증사관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오류입니다.

실지로 역사가의 주관을 배제한 완벽히 객관적인 역사는 없으며
그런 역사서는 실증사관학자들의 꿈에서나 찾을 수 있는 역사입니다
.

우리가 한단고기를 '연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감정적으로(부정적이나 긍정적이나) 대하는 것 자체는 모두 좋은 접근방법은 아닙니다.
감정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막무가네식 위서 논란은 지양해야 합니다.


(원문 출처: http://www.joara.com/community/board/boardView.html?bbsid=board&idx=2621&kind=%B9%AE%C7%D0&sub_bbsid=board_criticism )


참고로.....
위서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반론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한단고기(桓檀古記)의 가치성

http://bluecabin.com.ne.kr/investigation/hdvmain.htm




기타, 참고할만한 내용들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http://cafe.daum.net/ALILANG/EycU/36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http://cafe.daum.net/ALILANG/EycU/37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내가 새로이 알게 되었거나 호기심을 느끼게 된 점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왕조 초기시절인 세종 등의 시기에.....한민족 고서들을 모두 강제로 걷우어들여
조선왕조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현재 한민족 고대사서들이 거의 없는 이유는 그저 일제가 벌인 말살정책 때문인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조선왕조 자신이 말살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단지....왕권강화 차원만의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이씨 왕조의 민족적 뿌리 자체가.....혹시 한민족 계열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 마저 들게 되었다.

2) 위 반론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불과 몇가지 사실만을 보아도....합리적 추론능력과 사고방식만 있다면
한단고기가 결코 예사로운 책이 아님을 즉시 눈치챌 수 있을 것인데도....
왜 "실증 주류사학파"들은.....한사코 그것을 "위서"로 몰아가고자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한단고기가 만일....."위서"가 아니라, 그 내용 중 일부만이라도
"진서"로 밝혀지는 날에는...."실증 주류사학파"들의 생존과 직결된 무엇이라도
혹시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문제들에 있어서까지는 내가 추적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누군가가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출처 - http://engjjang.egloos.com/10207548

Share

Leave Comments



T-NA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