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조림 사이의 꼴뚜기 단편

 선생님과 학생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분류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다고 꼭 그러라는 법은 없다는 말도 두 가지 정도로 분류해 해석해 예를 들곤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모든 학교에 특별반이 있다고 해서 우리 학교에도 있으란 법이 없다는 것과 내 친구들이 다 특별반이라고 해서 나까지 특별반이라는 법은 없다 정도로 예를 들었었다.
 말은 이렇게 시작했지만, 학교에는 특별반이 있었고 난 친구들과 같이 특별반에 속해있었다. 오십 명 남짓으로 구성된 특별반. 우리는 우리가 아닌 나머지 육백 십여 명이 이미 이 치열한 경쟁에서 열외되 버린 존재임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어쩌면 그런 사상의 일치 때문에 우리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가는 겁니다. 전 이따위 경쟁 체제에 질렸어요. 새로운 삶,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울타리 밖에서요. 그럼 이만."
 정치적 성향, 혹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게 다양한 법이라 배웠기에 전교 2등의 자퇴는 우리 사이에서는 별 이슈거리가 되지 못했다. 열외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떠들어대던, 우리는 우리 서로와 숫자로만 가늠되는 교문 너머의 경쟁자들과의 마라톤에 바빠 그런 뜬구름 잡는 일에까지 신경을 써줄 여력이 없었다. 나중에 자퇴했던 전교 2등이 S대 사회학과 학생 출신의 고학력 가수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는 속이 쓰렸지만, 그건 좁은 우물에서의 경쟁이 끝난 뒤였다. 좁은 우물이라. 그래. 좁은 우물이었다. 이 이야기는 두레박이 없었다면 여전히 갇혀 있었을 우물에서의 이야기이다.
 "들어가고 싶어요."
 "하지만, 알잖아. 넌 등수가 안 돼."
 "자리 하나 애매하게 빈다면서요. 거기 껴 주세요."
 우리의 경쟁이 절정에 다다른 고3 시절. 열외반 사이에서는 무난한 성적을 받던 애 하나가 선생님을 졸랐다. 담당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그 아이를 우리 사이에 집어넣었다. 우리가 2년동안 서로 바라보고 경쟁하며 만들어놓은 테두리에 열외자가 끼어들어 버린 사건이었다.
 "못 견뎌." 내 앞 자리에 앉는 학생이 딱 잘라 말했다.
 "특별반이 일반 애들이랑 학습 시간부터 차이가 얼만데. 얼마 안 가고 힘들어서 관둘 거야."
 "만약 그 자식이 졸면서 공부 방해하면 선생님한테 바로 말할 거야. 걔 내 앞자리잖아. 난 누가 내 주변에서 졸면 힘 빠져서 공부 못해."
 "난 차라리 잤으면 좋겠다. 딴 짓 하면서 신경 쓰이게 하는 거 보다야 낫지."
 "그냥 노래나 쳐 들으면서 시간 죽이지 않겠어? 처음이야 공부 좀 하겠지만, 뻔하잖아. 의지박약."
 "하여간, 방해되면 말하자. 그럼 되잖아."
 어떤 학생의 말을 마지막으로 뒷담화에 가까운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우리가 나누던 모종의 기대와는 다르게 열외자는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경쟁에 참여했다. 아니, 열심히 경쟁에 참여했는가는 알지 못했다. 나 달리기도 바쁜데 어떻게 열외자의 상황까지 알겠는가. 그가 경쟁에 참여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내 바로 뒤에서 그가 쫓아온다 해도, 그건 한 바퀴를 넘어선 정도의 차이임이 분명했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한 바퀴를 좁힐 수는 없었다. 강에 던진 조약돌처럼, 얼마 못 가 시간은 다시 평범하게 흘러갔고,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잔잔한 중에 터졌다.
 그때 나는 다섯 번째 푸는 수능기출 지문의 문제 하나를 고민하며 일종의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들리지 않을 정도의 끙하는 앓는 소리를 뱉고 쭈그렸던 몸을 펴는데, 주말에 텔레비전에서나 가끔 듣던 유행가가 자습실을 울렸다. 순간 우리의 시선은 단 한 곳, 예전에는 전교 2등의 자리였지만 이제는 열외자로 경쟁에 참여한 학생이 앉은 그 자리로 모였다.
 '드디어 하나 터트리는구나.'
 '내가 왜 사고 안 치나 했다.'
 '재가 미쳤나.'
 '미친 거 아냐.'
 '잘한다 아주.'
 '퇴출 축하.'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의 뒤통수와 표정에서 짜증 섞인 비웃음이 읽어졌다. 그리고 열외학생은, MP3를 듣고 있지 않았다.
 "아, 미안하다."
 감독 선생님이 전화를 받으며 자습실을 나가고, 우리는 조용히 선생님의 나간 문만을 바라봤다.
 고시 공부를 하던 중 갑자기 떠오른 추억에 나는 시선을 풀고 책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조금만 쉬기로 하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풀었다. 김치에 계란말이, 멸치조림과 쌀밥. 별 의미 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젓가락으로 멸치조림을 휘젓는데 멸치가 아닌 놈이 보였다. 멸치잡이의 그물에 어쩌다 말려 들어간 안쓰러운 꼴뚜기. 어쩌면 난생처음 보는 생물들 사이에 끼어 죽음을 맞이했을 작은 꼴뚜기. 나는 멸치와 같이 졸여진 꼴뚜기를 유심히 보며 뭔가를 떠올리려다 그냥 입에 털어 넣어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꼴뚜기의 처지를 위로해주기엔, 내 배가 너무 고팠다.


요새 자꾸 사랑 혹은 학교의 얘기만 끄적이는 거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소설 내의 주인공처럼 자괴감이 드는군요. 하하.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인데 주인공이라니…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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