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난다. 잡문
2010.03.06 13:38 Edit
"5층입니다."
등교시간.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이럴 때면 혹시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그런 허황한 두려움을 깨는 출근하는 아저씨 혹은 아줌마의 등장으로 다시 평화롭고 지루한 등교가 시작됐건만, 웬일로 처음 보는 아가씨, 정확히는 여고생이 들어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고생은 문에 바짝 다가가 서 있는 내가 안 보인다는 마냥 지나쳐 엘리베이터의 거울 앞으로 다가가 섰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일 층에 도착하고 여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나를 잽싸게 지나쳐간다. 내가 그리 꼴사나운가 생각하기도 전에 여자의 뒤를 따라가는 갓 머리감은 냄새에 코가 찌릿하고 정신이 어지러워진다.
버스에 올라타서 별 의미 없는 상념에 잠겨 있다 문득 시선을 버스 안으로 돌렸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성비가 칠대삼. 하지만, 그 노래 가사와는 다르게 여성 쪽이 더 많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우연히 만들어지는 집단에서의 성비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문득 황도 통조림의 뚜껑을 막 열었을 때의 냄새가 얼굴로 끼쳐온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여학생 두 명이 내가 앉은 자리로 서서 수다를 떨고 있다. 내가 그녀들의 시끄러운 수다보다 몸에서 풍기는 황도 냄새를 더 신경 쓰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리가 하나 비워지자 두 여자 중 한 명이 망설임 없이 내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더욱 내 코를 파고드는 황도 향을 맡으며 나는 '향기가 난다.'라는 제목의 글을 쓸 마음을 품었다.
글을 쓰다 잠시 디데이를 확인하고 책상에 적어봤다. 수능까지는 257일이 남았다. 지나온 날을 적어보니 미투데이는 953일, 살아온 지는 6235일, 또 그 누나는 7046일이 된다. 우습게도, 그 누나를 연인으로 부른지는 344일이다.
내가 연인과의 사귐을 우습다고 표현한 건 혈연이 아닌 사람하고 이렇게나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참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건 자주 못 보는 데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애틋한 마음 때문이리 생각해버린다. 만약 내가 나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몸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어서 헤어지고만 싶을 것이니 말이다.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좋은 향기가 난다. 화장품 냄새는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 냄새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냄새를 지나치게 잘 맡고 지독히도 싫어하기에, 그녀의 향기는 분명히 사람의 것이 아닌 미지의 무언가이다. 고양이의 향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고양이가 달라붙는다 하기도 하고, 그녀가 들으면 언제나 혼내는 듯 불쾌해하는 듯 미소를 지어주는 비유로 '슈렉에서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 같은 여자니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연애 초에 그녀와 만날 때는 헤어지고 나면 귀여운 얼굴도, 아기 같은 목소리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흐릿한 실루엣으로만 기억했던 시간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예전에 내 옷깃을 끌어당겨 얼굴에 갖다대면서 옷에서 나의 냄새가 나 좋다고 했던 때에, 나 역시 그녀의 몸과 옷에서 나는 그녀의 향기에 몸이 달아오르고 오금이 저린 기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 기분, 그 향기만은 다른 예쁜 특징들과는 달리 흐릿하게 흩어져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향기가 난다는 걸 아는 유일한 두 사람일까. 그래서 우리가 쉽게 멀어지지 않는 걸까. 일주년이 십이일 남은 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더라도 왠지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너의 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좋은 향기가 난다고.
중학교 2학년. 정확히는 열네살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아마 이런 글이 내 손에서 나왔다는 걸 심하게 부정했을 겁니다.
그 때 즈음에 식상한 얘기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얘기는 쓰지 말자 다짐했었으니까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서, 이렇게 직접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군요.
근황이나 지난번 글의 속편은 차차 시간이 나면 올릴 생각입니다.
프로필을 보셨다는 아시겠지만, 나름 수험생이거든요.
아, 그리고, 애인님이 다이어트를 하신답니다. 응원해주세요. 흐흐.
- [2011/04/30] [삼성전자, 갤럭시SⅡ 출시]갤럭시SⅡ를 공개합니다! (14865, 1) *3
- [2007/04/26] Hallo, 베를린 (227)
- [2010/12/22] 위키리스크 암호 공개? 해킹? (2947)
- [2010/09/18] 스마트폰 ‘앱’을 닮은 웹 브라우저…IE9 베타 공개 (4399)
- [2010/08/24] 마이클 잭슨 (563)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군(...)